신해철의 사망과 뮤지션들의 죽음이 나에게 던지는 슬픔
컴퓨터를 하고 있던 27일 저녁 내 작업실에 뛰어들며 줄리가 말했다. “오빠! 신해철씨가 사망했데.”… 쾌유를 바라던 줄리는 놀라운 음성으로 내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생각외로 내 머리속은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랬구나 하는 정도였다. 28일이 되자 온 미디어와 SNS 그리고 내 연배의 사람들이 요동친다. FM for U 의 90.1MHz 채널에서는 모든 DJ들이 신해철을 추모하기 위해서 노래를 틀고 있었다.
그때서야 내 머리는 쾅하고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잊고 살았던 음악에 대한 그리움…그리고 언제나 영웅 같았던 뮤지션들의 죽음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 했다. 마치 사랑하던 내 연인을 잃은것 같은 이 아픔이 몇번째인가 싶다.
최초의 충격은 1991년 Queen 의 Freddie Mercury(프레디 머큐리)의 사망소식이었다. 고2 시절 집 한켠을 굴러다니던 Queen의 테이프를 우연히 넣었다가 들은 음악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이자, Queen의 리드보컬로 4옥타브의 음역대와 독특한 무대매너 등으로 역사상 최고의 보컬 중 한명이라 단언할수 있다. 그 유명한 Bohemian Rhapsody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카펠라, 발라드, 오페라, 하드 록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데다 영국차트 9주간 1위, 3개월간 100만장 판매 등의 기록을 세워 대중적인 인기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대성공을 거둔다. 대한민국에서는 “Mama, just killed a man” 이라는 가사때문에 1989년까지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라이브 비디오를 보면 프레디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발라드로 시작하는 이 Bohemian Rhapsody는 지금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으로 남았다.
9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있던 나를 위로해주던 We are the Champions, Love of My Life, Somebody to Love, Don’t Stop Me Now, Killer Queen, Radio Ga Ga 등 그의 명곡들은 그렇게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두번째는 Ozzy Osbourne(오지 오스본)의 불멸의 천재 기타리스트 였던 Randy Rhoads(랜디 로즈)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어릴적 소아마비로 인한 절름발이로 몸이 성치 않았고 3년의 Ozzy Osbourne 밴드 활동 중 27세의 나이에 1982년 비행기로 추락사고로 요절하기까지 기타실력과 인생 모두다 드라마틱한 전설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어릴적 클래식 기타를 했던 탓인지 클래시컬 하면서도 멜로디성이 강해 한곡한곡의 확연한 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작곡가 같은 기타리스트 였다. 속주나 즉흥연주 위주가 아닌 리프와 리드미컬함 그리고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어 진행하는 그의 기타는 정말이지 감미로우면서도 놀랍기 그지 없다. Crazy Train 같은 곡을 들어보면 광란 열차가 질주하는 모습을 기타로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헤비메탈을 듣기 시작한 91년에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난지 10년 가까이 되버린 망자였다. 단 두장의 앨범과 Tribute 라이브 편집 앨범만으로도 그에게 푹 빠졌고, 지금도 역시 나에겐 No.1의 기타리스트로 Randy Rhoads를 주저없이 꼽고 있다.
조용하고 수줍어 하는것 같은 젊은 청년이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광란의 질주가 시작된다. 그 기타 리프와 멜로디를 한번이라도 들어보신 분이라면 헤비메탈도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것이다.
세번째는 김광석이었다. 1996년 타계한 그는 자살로 확인됐지만 아직도 가족과 친한 지인들은 자살이 아닐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포크가수이자, 가장 아름다운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의 노래말이 기타선율속에 퍼지기 시작하면 아련한듯 가슴이 저미면서 눈물이 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서른 즈음에, 일어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사랑이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변해가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등 수많은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기고 그 역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얼마전 히든싱어 김광석 편은 그를 떠나보낸 시간이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가 음악이 되어 흐르기 시작하자 TV를 보는 내내 남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로 꽤 곤혹스러웠다.
네번째는 2009년 Michael Joseph Jackson(마이클 잭슨) 이었다. 위의 사람들 중 세계적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바로 마이클 잭슨일텐데 50세의 나이에 급성 프로포폴 중독으로 사망한다. 가늘고 부드러운 보이 소프라노 같은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던 마이클 잭슨의 사망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스타들과 정치가들이 수많은 애도의 표현을 했을만큼 그는 세계의 별이었던 것이다.
Thriller(스릴러)는 1982년 발매 이후 2006년까지 1억 4백만장 이상의 판매량으로, 2006년 기네스북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었다. 이 스릴러만 놓고 보아도 쉽게 마이클 잭슨이 설명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성추행 등 수많은 구설수와 재판, 루머에 휘말렸지만 음악에서는 언제나 최고의 결과물을 내어놓는 세계적인 몇 안되는 스타였다. 인기의 크기 만큼 사생활도 자유롭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때론 그의 생활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때가 있다.
구구절절 윗 뮤지션들처럼 열거할 필요도 없이 88년부터 96년까지 내 고1 시절부터 군복무, 그리고 복학을 끝내고 졸업하던 그 시절까지 내 청춘의 한페이지에 강하게 채색되어 있는 그의 음악을 지운다는 것은 앞으로도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내 연배의 많은 분들이 느끼고 있듯이, SNS의 많은 글들이 그 증거이듯, 그의 음악과 철학 그리고 마왕이라 불리던 그의 애칭까지도… 이제는 더이상 그의 육성으로 들을수 없다는 슬픈 사실이 꽤 괴롭다.
2014년 10월 28일 신해철의 사망속으로 하루종일 FM dj들이 신해철을 추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마치 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주며 The Cranberries의 Dreams,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 Dream Theater의 Another day, Black Sabbath의 Changes와 Judas Priest의 Pain Killer, Matchbox Twenty의 If You’re Gone. 까지 듣다가 라디오를 꺼버렸다.
이외에도 94년 Nirvana의 Kurt Donald Cobain의 권총 자살 등을 꼽을수 있는데, 이런 뮤지션들의 죽음이 지금에 와서 더욱 크게 나에게 던지는 슬픔이 있다. 바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뮤지션들의 죽음이 불운한 사고이건 자연사이건 간에 주변과 내 환경이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렇게 바뀐 환경이 벌써 20년전을 추억하고 있다는 작금의 사실이, 청춘이라는 시간은 흐르고 나면 더더욱 빨라진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허투로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나도 그러한 죽음을 앞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건 아닐까 ?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청춘을 함께했던 누군가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씩 두번씩 느끼고, 주말마다 문상이 생길때면 나는 내가 마주해야할 용기가 더욱 가까이 오고 있음에 더욱 슬퍼지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짧은 시간만큼 충실한 삶을 다짐해보지만 게으른 마음은 시간이 조금 흐르면 또다시 나태해지겠지. 그렇지만 지금 이 기분을 느끼고 있는 지금만이라도 내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