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주연의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국제시장’
사실 줄리와 어머니가 보고 싶은 영화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최근 독립영화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이 영화를 보면 끝없이 눈물을 흘려야 할것 같아서 시선을 돌린 영화가 국제시장이었다. 그런데 이영화 역시 신파극이라 가끔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사진들의 출처는 movie.daum.net 입니다.
영화평을 잘 보거나 하는 편은 아닌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포레스트 검프가 떠올랐다. 그리곤 검색을 하다보니 이미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평이 있었다. 황정민 주연의 덕수는 한국의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관통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의 평범한(?) 늙은 노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내가 이 덕수의 개인적인 역사에서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아주 자잘하고 사소한 사건들에서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되었다. 천사장사가 되기전 어릴적 이만기와의 스치는 만남이라던지 이런 자잘한 깨알같은 에피소드들을 깔아놓음으로써 마치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있을때 같은 영화적 재미와 사건의 구성에 대한 나름 치밀함이 돋보여서 좋았다.
물론 기본적으로 6.25당시 흥남부두, 전쟁 전후의 국제시장, 독일 파견 광부들의 삶, 베트남 파병, 이산가족 찾기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들을 자연스럽게 덕수가 찾아가게 필연적이고 인과적인 구조로 만들어 우리 아버지 세대의 아픔과 삶의 무게를 잔잔하고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간 윤제균 감독은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의 코메디성 영화들과 ‘해운대’에서 보여준 진지함이 결국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통해 집대성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코메디 영화를 만들어온 탓에 이 영화에서도 큰 맥락을 헤치지 않으면서 곳곳에 유머와 웃음 코드를 집어넣어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덕수 그 자체의 존재와 아버지라는 단어만으로 우리에게 진지함과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우리 윗세대의 아픔을 잘 그리고 있다.
그리고 윤제균 감독의 집요함 이랄까 ? 웃기려는 영화에서는 끝내 웃겨야 하듯 국제시장을 보다보면 안울고 버텨낼 제간이 없다. 결국 관객을 울리고 마는 집요함은 윤제균 감독의 성향일까나 ?
덕수의 꿈은 선장 이었다. 자신의 꿈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삶 그자체를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남은 것은 세대간의 갈등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의 벽 뿐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위해 아버지의 희생을 강요했지만 아버지에게 꿈이 뭐였냐고 물어보는 자식은 얼마나 됐을까 ? 나 역시 그렇지 못했기에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내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
누구나 다 삶이 힘들다. 그 힘든 삶을 왜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그게 왜 아버지 인지 이 영화는 큰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버지로 사는 삶에 대해서 충분히 말하고 있다.
국제시장은 전체적으로 ‘삶’과 ‘아버지’라는 두 단어 때문에 무거운 주제를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듯이 풀어내기 때문에 무거운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치 우리의 삶처럼 즐거운 장면들을 하나씩 배치해서 우리의 삶이 지겹고 무겁기만 하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덕수가 사랑을 하며 즐거워하거나 파티를 열던 장면, 결혼식을 올리던 장면, 절친 달구(오달수 분)와의 즐거운 장면 등 삶의 무게에 짓눌린 덕수에게도 즐거운 시간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삶의 무게에 아무리 짓눌려도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은 반드시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몇몇 영화평을 보다보니 세대간의 갈등이 심한 지금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기억하라는 등떠밀기가 불편할수 있다는 글들과 이와 비슷하거나 박정희를 끌어들여 미화하고 있다는 평들이 있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 것이고 계산에 빠른것일까 ? 그냥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하면 안되는 것일까 ?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가족을 먼저했던 우리 이전세대와 지금 세대의 패러다임과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고마운것 마저 필요없는 것이나 불편한 짐처럼 느낀다는 것은 지금 이시대가 ‘공감’을 말하면서도 얼마나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단어를 내뱉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세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도 나름 어린나이에 9남매를 혼자 키우면서 가장으로써 가족을 이끌어주신 내 아버지 덕에 잘살고 있다고 고마워 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와의 충돌도 많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지만, 고마운건 고마운거다. 남이 내게 밥한끼 사줘도 고마운데 날 키워준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솔직하게 하지 못하는 지금의 세태는 너무나도 씁쓸하기만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